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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0. 10世 〉18. <부정공>돈은조공휘개묘갈명(遯隱趙公諱愷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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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부정공>둔은공사실(遯隱公事實)휘개(諱愷)
遯隱公事實 公諱愷字悌伯節愍公四世孫父諱昌門行彰信校尉部將而下車求禮淸德善玫至今有遺哀墮淚碑公天性敦厚沉黙自幼時不喜談戯常居正衣冠危坐專心於性理之學無意於榮利之求遯世隱跡自號曰遯隱盖深切於先世之慘禍謝絶世事而然也聾盲於塵綱之消息逍遙於山水之清致嘗曰吾家世業不外乎忠孝二字爲子而當盡孝於事親也爲臣而必竭忠於報君也每以是訓子姪勉宗黨爲齊家之謨而若將終老於邱園矣逮夫 宣廟己巳有丙子死節人後裔錄用之命其時公除禮賓寺參奉其從弟倫及信亦除慶基殿崇仁殿參奉 둔은공사실(遯隱公事實) 공의 휘는 개(愷)요, 자는 제백(悌伯)이며 절민공의 四세손이었다. 고의 휘는 창문(昌門)인데 행직창신교위부장(行職彰信校尉部將)으로 구례(求禮)에 부임하여, 맑은 덕으로 착한 정치를 하였으므로 지금 유애타루비(遺哀墮涙碑)가 그 공적을 현향하고 서 있다. 공은 천성이 돈후하고 침묵하여 어려서부터 유희를 즐겨하지 아니하였고, 평일에도 항상 의관을 정제하고 꿇어앉는 공경을 가졌으며 성리학(性理學)에 전심하고 영리(榮利)를 탐할 뜻이 없어 세상을 피해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둔은(遯隱)을 호로 삼았으니 이는 아마 선세의 참혹한 화변을 깊이 절감하여 세속의 일을 사절한 때문이었던 것 같다. 풍진 세상의 소식을 듣고 보지 아니하고 산수의 맑은 풍경에 노닐며 일찍이 가로되 우리 집 세업(世業)이 충효(忠孝) 두 글자에 있으니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를 다하여 어버이를 섬길 것이며 신하가 되어서는 반드시 충성을 다하여 인군(人君)께 보답하여야 한다 하고 매양 이로써 자질을 훈계하고 종당을 면려(勉勵)하여 집을 다스리는 법칙을 삼고 장차 임천(林泉)에서 종신(終身)하고자 하였다. 선조(宣祖) 기사년(一五六九)에 병자년 일에 죽은 사람의 자손을 녹용(錄用)한다는 은명이 내려 그때에 공은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에 제수되고 그 종제 윤(倫) 및 신(信)도 또 경기전 숭인전(慶基殿崇仁殿) 참봉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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